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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대신문-천마로를 거닌 사람] 삼성 라이온즈 No.34 김헌곤 동문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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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대신문] 천마로를 거닌 사람 - 정유진 기자, 이상준 기자, 류현우 준기자 
사자 군단의 새로운 리더, 삼성 라이온즈 No.34 김헌곤 동문
      
 
김헌곤 동문(체육학부 07학번)은 우리 대학교 체육학부를 졸업한 후 프로야구단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했다. 헌신적인 플레이를 바탕으로 팀의 주축으로 성장한 그는 실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2022시즌 팀의 주장으로 임명됐다. 다가올 정규 시즌, 성실함을 바탕으로 삼성라이온즈의 외야를 책임질 그를 만나봤다.
 
학부시절 본인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저는 체육 특기생이었기 때문에 강의를 수강하기는 했지만, 공부 보다는 운동에 더 비중을 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 학부 시절을 떠올려보면 온통 야구와 관련된 것들 뿐이에요.
 
우리 대학교 야구부로 진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드래프트 미지명으로 인생에서 처음으로 실패라는 경험을 했어요. 당시만 해도 선후배 사이가 엄격해서 다시 1학년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대학교 진학은 고려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시 영남대학교 야구부 감독님이셨던 권영호 감독님이 프로에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을 약속하면서 영남대 진학을 제안하셨어요. 저를 믿고 기용해주시겠다는 감독님의 말씀에 힘이 나서 영남대로 진학하게 됐어요.
 
대학 생활을 하면서 야구 외에 기억 남는 일이 있다면 알려주실 수 있나요?
대학 시절 정말 야구만 했던 터라 그렇다 할 일화 같은 게 없어요. 축제를 즐기긴 했는데 그때는 노는 것이 사치라 생각해 마냥 편하게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쉬는 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야구에 소홀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죠. 그래서 저는 야구와 친구 중 하나를 선택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저는 그때 야구를 선택했어요. 야구를 선택한 이후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야구만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대학교 1학년 시절, 신입생으로서 100타석이 넘는 공격 기회를 얻었고, 34푼대 타율을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입생 시절부터 많은 기회를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 의지랑은 상관없이 여러 상황들이 계속 야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줬어요. 무엇보다도 선배의 부상으로 인해 제가 대타로 출전한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것이 감독님의 눈에 들었지 않나 생각해요. 덕분에 감독님께서 저를 계속 기용해주셔서 좋은 기록을 낸 것 같아요.
 
대학 시절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2009 야구 월드컵에 참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1학년 때 성적이 좋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예비 명단에 들었어요. 예비 명단에 들면서 프로의 꿈도 키웠고, 대학 대표팀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죠. 그때 우리 대학교 유니폼은 상아색과 검은색이었는데 국가대표팀 유니폼은 하늘색에 빨간색 조합이 많았어요. 국가대표의 꿈을 품고 대학 대표팀 승선을 목표로 최종 명단이 발표되기 전에 대표팀 컬러에 맞춰 장비를 주문했어요. 그런데 제가 최종 명단에 들어 국가대표가 되니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죠. 비록 성인 대표팀은 아니었지만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대표팀에 발탁된 순간이었기 때문에 해외 선수들과의 경기를 직접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저에게는 소중한 순간이었어요.
    
대학 시절 가장 힘들었던 순간, 김헌곤 선수에게 힘이 돼 주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아버지께서도 야구를 20년 정도 하셨기에 운동선수 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아셨어요. 그래서 제가 야구를 시작하는 것을 반대하셨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는 꾸준히 야구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결국 야구를 시작하면 끝까지 열심히 하기로 아버지와 약속했어요. 그 후 제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운동했던 것 같아요.
 
다시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20대 초반의 시간이지만, 운동 외적인 친구들과도 사귀어 보고 싶고 축제도 즐겨보고 싶어요. 사실 다시 돌아가도 전 야구만 할 것 같아요(웃음).
 
고등학생 시절 투수를 희망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포지션에서 외야수를 맡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어깨가 튼튼한 편이라 처음에는 투수를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키가 많이 크지 않았어요. 그리고 어깨 부상을 겪으며 제가 투수로서 경쟁력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러던 중 주변에서 제게 타격에 더 재능이 있다고 이야기하셔서 외야수로 전향하게 됐어요.
 
지난 2011년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성라이온즈에 지명됐을 때 당시 기분은 어땠나요?
야구부 동기들 중 아무도 지명을 받지 못하고, 저만 지명을 받아 앞에서 좋은 티를 내지는 못했어요. 오히려 제가 좋은 티를 내버리면 제가 고등학생 때 프로에 지명되지 못해 느꼈던 좌절감을 동기들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혼자서 조용히 좋아했던 것 같아요. 또한 프로팀에 지명된 후 어머니께 전화 드릴 때 울컥했던 기억이 나요. 특히 제 소속인 영남대학교 야구부가 대구·경북 연고였기 때문에 같은 지역 연고 팀에 지명이 돼서 너무 좋았어요.
 
2011년 입단하신 해에 1군에 데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군 타석에 처음 들어갔을 때 기분이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 야간에 혼자서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서 스윙 훈련을 한 순간이 많아요. 그때마다 관중들의 환호로 가득한 프로야구장에서 제가 홈런 치는 장면을 상상했어요. 그런 상상했던 순간들이 제 앞에 실제로 펼쳐지니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어요. 비록 당시에는 지나친 긴장감으로 인해 삼진을 당했지만, 1군에서의 제 실력을 파악하게 해준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지난 2014,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야구선수에게 한국시리즈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십 수 년 동안 한국시리즈를 경험하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선수들도 많아요. 당시 주축 선수는 아니었지만, 운이 좋게 한국시리즈에서 백업 선수로라도 뛸 수 있어 영광이었죠. 이처럼 한국시리즈는 모든 선수들의 최종 목적지이자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할 수 있어요.
 
김헌곤 선수는 성실함의 아이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쑥스럽지만 그렇게 봐주셔서 팬분들께 정말 감사해요. 그래도 저는 성실함의 아이콘보단 야구를 잘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2017시즌부터 등번호 ‘34’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등번호로 34번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국군체육부대를 전역했을 때 34번을 달았던 최형우 선수가 기아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34번 배번이 비었어요. 이에 당시 삼성라이온즈 김한수 감독님께서 저에게 네가 34번을 달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이후 감독님의 말씀에 따라 쭉 34번을 달고 경기를 뛰고 있어요. 전 지금도 제 등번호가 마음에 들어요.
 
지난 시즌 삼성라이온즈는 오랜 암흑기를 지나 가을야구에 진출했습니다.
지난 시즌 삼성라이온즈의 가을야구가 너무 짧게 끝나서 정말 아쉬웠어요. 삼성라이온즈가 1KT위즈에 상대 전적으로는 앞섰지만 두 팀의 승률은 동률이었기 때문에 *타이브레이커를 치렀어요. 결국 KT위즈가 타이브레이커에서 승리하면서 저희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죠. 저희 팀이 가을야구에 진출해서 정말 좋았지만,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탈락해 많이 아쉬웠어요.
 
이번 시즌 삼성라이온즈 주장을 맡게 되셨습니다. 주장으로 선출된 배경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나요?
주장 후보로 저와 오재일, 구자욱 선수가 나왔어요. 저는 당연히 오재일 또는 구자욱 선수가 되리라 생각했죠. 그런데 야구장에 도착해서 눈을 뜨니 선수들 모두 저에게 축하한다고 하더라고요. 주장은 너무 영광스러운 자리이기도 하고, 많은 선수들이 저를 뽑아줬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주장 역할 다할 생각이에요.
 
주장 김헌곤 선수가 생각하는 리더란 무엇이며, 올 한해 선수단을 어떻게 이끌어갈 계획인가요?
어떤 때는 카리스마 있게 선수단을 이끌고 가는 것이 좋은 리더 같고, 어떤 때는 선수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자유로운 리더도 좋은 것 같아요. 영남대학교 야구부 주장 시절에는 후배들을 통솔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하지만 프로는 모두 성인이고, 각자 통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므로 오히려 선수들을 직접 이끌어 가기보다는 제가 먼저 솔선수범할 생각이에요.
 
시즌을 앞두고 주장으로서 각오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지난 시즌 많이 아쉬웠기 때문에 가을야구를 가겠다는 형식적인 각오는 삼가고 싶어요. 결과를 떠나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테니 많은 팬들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경기를 통해 팬들께 긍정적인 에너지를 드릴 수 있길 바라요.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하신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2014년 한국시리즈 5차전 9회말, 최형우 선수의 끝내기 2타점 적시타로 1루 주자였던 제가 홈베이스까지 달려가서 슬라이딩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당시 홈을 향해 달릴 때 제 앞에 보이는 흰 베이스가 빛나고 있었어요. “저기 닿으면 경기는 끝난다라는 생각이 들어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전력 질주했죠. 베이스를 터치하는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아요. 순간적인 아드레날린 수치로 표현한다면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높았을 거예요.
그리고 2013시즌 이후, 제가 손목 수술을 했었는데 재활을 하면서 야구를 그만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하지만 2014년도에 복귀한 후 1군에 콜업된 경기에서 선발로 3안타를 기록한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가 저의 선수 생명을 연장하게 해준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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