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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 News Room

[YU人] 이용환 하이테크섬유(주) 대표 N

No.1961200
  • 작성자 통합관리자
  • 등록일 : 2017.06.16 00:00
  • 조회수 : 9232
사람보다 똑똑한
기능성 의류 시장의
작은 거인
 
이용환 하이테크섬유(주) 대표 (섬유공학 70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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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설 수 없는 절박함으로
두려움 없는 용기로 도전하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광고문구처럼 스포츠의류 또한 옷이 아니라 과학이다. 이용환 대표는 자체 연구소를 가지고 경량 다운 제품에 사용하는 소재를 집중 개발해오는 한편, 온도에 따라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섬유 성질이 변하는 일본의 디아플렉스 섬유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하이테크섬유 빌딩 샘플실에는 2012년 런던올림픽 때 국가대표 선수단을 위해 특수제작한 체육복이 수많은 샘플들과 함께 걸려있다.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이 입는 체육복은 소재부터 디자인, 선수들 개인체형까지 고려한 그야말로 스포츠의류 과학의 총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올림픽에 국가대표 선수들의 의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과학적 소재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인체공학적 설계이죠. 올림픽 의상이다 보니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하지는 못하지만, 매번 올림픽 때면 선수단 의상을 위해 전 직원이 매달려 실제 피팅과 제작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워낙 짧은 기간 내에 완성을 해야 하는 일이기에 그때는 모든 직원이 비상이죠.”
 
 올림픽 국가대표 의상이 무엇이던가? 각국의 간판 디자이너를 앞세워 자존심 경쟁으로까지 이어지는 그런 옷이 아니던가. 나서서 자랑할 법도 한데 무심한 듯 얘기하는 이용환 대표에게서 직업의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이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30년이네요.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저는 이런 얘기를 해주곤 합니다. 자본금을 갖고 사업을 시작하지 말라고요. 창업을 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어떤 시련이든 참고 견딜 힘이 된다고요.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함이 기회를 만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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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때마다 새로운 기회가 되어준
영남대학교 그리고 섬유
 
 그는 지독한 노력가로도 유명하다. 일명 그는 흙수저다. 1970년 영남대학교에 합격한 그는 구미의 한 시골마을에서 그야말로 대구로 유학을 오게 됐다. 학창시절 그는 도서관 문열 때 들어가 문닫을 때 나오는 유명한 학구파였다.
 
 “71년도에 우연히 일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하루 11시간 정도 몰입해서 공부했죠. 마침 그때 구미에 전자공단이 생기면서 일본의 전자기업들이 진출을 시작하던 때였어요. 일본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일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죠. 한번은 일본 친구들이 학교에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반일감정이 심했던 때라 몹시 난감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는 학창시절 독학으로 일어를 공부하고, 대구 시내에 미국문화원을 다니며 영어공부를 했다. 졸업 후 섬유공학의 전공을 살려 일을 시작한 그는 학창시절 갈고 닦은 영어와 일어 실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저는 후배들을 만나면 무조건 열심히 공부 하라고 말합니다. 그 중에서도 언어를 강조하는데 유럽대륙의 국가들은 근접국가의 언어를 최소한 3개국어 이상 합니다. 특별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를 접하고 있으면서도 영어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용환 대표는 한평생 자신을 이루어 온 것이 영남대학교와 섬유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진심 어린 모교사랑 특히 후배 사랑이 지극하다. 학교로 찾아가 후배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서울로 취직해서 올라온 후배들을 자주 만나 따뜻한 밥 한 끼 기꺼이 사주는 편안한 선배가 되어준다. 밥 사달라며 찾아오는 후배 중엔 10학번 후배들도 있다 하니 말 다했다. 그는 2015년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며 장학금 25천만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더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그는 기부라는 것이처음엔 참 어려운데, 어떤 계기로든 시작을 하고 나면 어렵지 않은 것 같다.”며 자신역시 더 많은 후배에게 기회를 주지 못해 매우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인생 70의 의미를 물었다. 그가 아직 너무 먼 이야기라며 대답을 피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꿈을 묻는 말에는 1초도 망설임 없이 답을 준다. “중국어 공부입니다! 지금 하는 중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잘하게 되는 것. 물론 70살까지는 무조건 열심히 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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